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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인간의 '청결' 강박 –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습관

by 콰렌스 2025. 5. 6.

— 미생물 미코의 두 번째 관찰일지

 

🚿 “저기요, 저 지금 씻지 마세요…”


하루에도 몇 번씩 인간은 물을 틀고, 거품을 내고, 우리를 쓸어버린다.
아침 세수? 괜찮아.
샤워? 그래, 땀났잖아.
근데… 항균 비누에, 알코올 젤에, 구강청결제까지?
거기다 수건도 햇빛에 말려서 멸균 상태로 교체?
그건 좀 선 넘지 않았니, 인간아?

 

나는 미코. 인간의 장내 생태계에서 사는 비피도균이자, 요즘 좀 과민성 인간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왜냐고? 인간이 또 새로 산 ‘살균 샴푸’를 써버렸거든.
덕분에 우리 식민지 3구역이 통째로 증발했지. 거긴 락티네 본가가 있었는데…

 

“우리는 세균이 아닙니다!!”
라고 외쳐도 들리지 않는 이곳,
여긴 인간 몸속이고, 인간은 자신을 늘 ‘청결의 왕국’으로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종종, 우리 같은 공생 미생물에겐 ‘재앙’이 된다.


💊 항생제? 우리에겐 핵폭탄이에요


살균제는 그래도 '외부 공격'이라서 피할 기회라도 있다.
하지만 항생제는 다르다.
먹는다. 인간이.
그럼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오늘 감기 기운이 있어서 항생제 먹었어.”
라는 인간의 무심한 말은, 우리 입장에선
“오늘 핵폭탄을 삼켰어.”와 같다.

 

그 한 알이 지나가면서 우리 마을의 절반이 사라진다.
심지어 그 감기, 바이러스잖아? 항생제 안 듣는다고요 인간!
그저 습관처럼 복용하는 이 '항생제 만능주의'는 인간과 미생물 모두에게 해롭다.

 

박사균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우리를 없애고, 결국 자기 자신을 약하게 만든다.”
정확한 말이었다.

인간의 면역 시스템은 원래 우리와 함께 훈련된다.
적당한 오염, 적당한 공생이 있어야 강해지는 법인데,
인간은 스스로 모든 걸 ‘완벽하게 살균’하려 들며,
결국 스스로를 더 민감하고 취약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


🧫 우리는 ‘더러운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사는 존재


인간에게 ‘청결’은 자존감, 예의, 생존의 상징이다.
이해한다.
하지만 그 강박이 도를 넘어서면, 우리에겐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고통이 된다.

 

우리는 병원균과 다르다.
우리는 이 몸 안의 조력자고, 감정에도 영향을 주는 조절자다.
실제로 어떤 연구에 따르면, 장내 미생물이 불균형할 경우
우울감, 불안, 심지어 성격 변화까지 초래된다고 한다.
우리는 단순한 ‘지저분한 존재’가 아니다.
정서, 면역, 소화, 신경계에 이르기까지
인간 삶의 뒤편에서 조용히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살균 99.9%’라는 문구에 안심하고,
‘균 제로’라는 광고에 박수를 친다.
우리 입장에선
‘정서 99.9% 파괴’
‘공생 관계 제로’ 같은 공포의 문장이란 말이다.


결론: 청결, 그 이름의 오해


인간이 청결을 추구하는 건 이해해.
하지만 이제 묻고 싶다.
그 청결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건강을 위한 거라면,
우리와 공생할 수 있는 방식도 있다.
무조건적인 멸균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만 정리하고
우리와 함께 강해지는 선택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인간이 이제 ‘청결’을
외부를 향한 방어가 아니라, 내부를 위한 배려로 바라보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라고
손 씻을 때마다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장내 어딘가에서 살아남은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도 오늘은 치약 맛이 덜하더라.”
“내가 보기엔 그 인간, 요즘 채소 좀 먹는 듯해.”

 

우린 그렇게 웃으며, 또 하루를 살아간다.
다만 그들이 또 항생제 한 알 삼키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항생제 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