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내 미생물 미코의 관찰 보고서
🧍 “이웃이긴 한데, 나를 죽일 수 있어요.”
“얘들아, 조용히 해! 대식세포 지나간다!”
어느 날 오후, 우리는 장 점막 근처에서 소곤거리며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지나갔다.
백혈구. 정확히 말하자면 대식세포.
몸집은 크고, 항상 눈빛이 날카롭고,
우릴 지나칠 땐 꼭 한 번씩 훑고 간다.
그 느낌? 음… 인간으로 치면 옆집 순찰 도는 무장 경찰이
내 방 창문 안을 매일 들여다보는 정도?
락티: “그, 그분은 왜 우리 쪽만 그렇게 살피시는 거죠…?”
미코: “우린 외부인 취급이니까.”
엔도: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도 국적은 안 주는 그런 느낌이지.”
우리는 인간의 장 안에서 수십억 년을 살아왔지만,
면역계는 여전히 우리를 ‘언제든 제거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같이 사는 건 맞는데, 믿는 건 아냐.
⚔️ 면역은 시스템, 우리는 변수
면역계의 존재 목적은 오직 하나야:
“내가 아닌 것”을 감지하고, 제거하는 것.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아닌 것"이라는 기준.
그 기준은 DNA도 아니고, 마음씨도 아니고, 의도도 아니야.
그냥, 면역계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느냐 아니냐로 판단할 뿐이지.
문제는, 우리 같은 장내 미생물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일부는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처음 보는 놈들"로 분류된다는 거야.
우리는 해를 끼치지 않아도,
그들의 기준에서 ‘수상한 활동’만 해도 표적이 될 수 있어.
박사균: “최근 항생제 투입 이후 면역 반응이 과민해졌습니다. 평소에는 우리를 지나치던 림프구가 어제 락티를 쫓기 시작했죠.”
락티: “저는 그냥 유산 발효 중이었어요… 정말이에요…”
항생제, 스트레스, 수면 부족, 외부 감염.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면역계는 예민해져.
그러면 평소엔 조용히 지켜보던 면역세포가 갑자기 공격적으로 돌변하지.
그 순간 우리는 무방비 상태야.
🧬 공존은 기적이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이 들어.
우리는 왜 인간이란 존재와 이토록 복잡한 위험한 공생 관계를 맺었을까?
답은 간단해.
함께 있는 게, 서로에게 이익이 되니까.
우리는 인간에게 비타민을 합성해주고,
면역 시스템이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조율자 역할도 한다.
반대로 인간은 우리에게 따뜻한 환경, 안정적인 자원을 제공하지.
하지만 이 공존은 언제나 균형 위에 서 있어.
면역계가 조금만 더 의심하면 우리는 멸종.
우리가 조금만 더 증식하면 인간은 염증.
그래서 우리는 매일 ‘티 나지 않게 기여하고, 조용히 존재하기’를 목표로 살아간다.
뭔가, 사람 많은 회사에서 해고당하지 않으려
과하게 나서지도 않고, 너무 조용하지도 않게 존재감을 유지하는 그 느낌이랄까?
🤝 이해받는 존재가 아니라, 존중받는 존재가 되길
우리는 면역계가 우리를 이해하길 바라진 않아.
단지, 존재 자체를 인정받고 싶을 뿐이야.
인간도 그렇지 않나?
모든 관계에서 “나를 완전히 이해해줘”를 바라는 건 무리라는 걸 안다.
그래서 차선으로 택하는 게 “그래도 나를 무해한 존재로 존중해줘”라는 요구지.
우리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우리가 오히려 인간에게 유익한 일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외부인’이 아니라 내부의 조용한 동료들로 남고 싶다.
내일도 나는 조용히 장내를 돌아다닐 거야.
가끔 대식세포가 날 째려보더라도,
그 눈빛에 익숙해져야지.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 공존을 배워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