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코의 장내 감정기록 보고서
🌫 감정은 냄새로 온다
처음엔 그저 공기가 달라졌다.
기압도 아니고, 온도도 아니었다.
‘기분’이었다.
우리 장내 미생물들은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지 않아.
하지만… 그 감정이 지나간 자리는 향기처럼 남는다.
어느 날은 장내가 무겁고 눅눅해.
어느 날은 막 새벽 풀잎에 맺힌 물방울처럼 맑지.
우리는 그 차이를 안다.
느낄 수는 없지만, 감지할 수 있다.
🧪 스트레스는 독처럼 퍼진다
그날 인간은 아침부터 불안했어.
회식, 야근, 기한, 그 복잡한 것들.
그 모든 감정은 뇌에서 나왔고,
결국 코르티솔이라는 물질로 장까지 도착했다.
우리에겐 그게 ‘비상 사이렌’ 같은 존재야.
코르티솔이 농도를 높이면, 장내 pH가 변하고,
점막은 민감해지고, 유익균인 우리들은 증식 활동을 멈추게 돼.
락티: “그날 이후 저는 발효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엔도: “그건 그냥 너 기분 탓 아냐?”
박사균: “아니야.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소화 효소 분비가 줄고, 점막 장벽이 얇아진다. 우리 입장에선 생태계 붕괴야.”
🎈기쁨도 온다. 잠깐이지만
하지만 그다음 날, 인간이 웃었어.
아마도 고양이 영상 때문이었겠지.
아니면 친구의 메시지, 아니면 커피 한 모금?
그 순간 세로토닌이 올라오고, 장내 온도가 살짝 올라.
배경의 ‘음악’이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지.
우리의 대사 작용도 활발해졌고,
그날은 락티가 발효하면서 풍선 모양으로 부풀기까지 했어.
락티: “제가 그날, 진짜로 방울처럼 통통해졌어요. 무슨… 생화학적 꽃이 핀 기분…”
미코: “우리는 감정이 없지만, 감정이 남긴 흔적을 몸으로 겪는다.”
박사균: “그리고 그것은 정보이자, 생존의 신호다.”
💡 감정은 인간의 것이지만, 그 여운은 모두의 것이다
인간은 자주 이렇게 말하지.
“내 기분은 내 거야.”
하지만 아니야.
그 기분은 피부를 넘어, 장까지 스며든다.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속이 쓰린 이유,
불안할 때 배가 아픈 이유,
우울할 때 식욕이 없는 이유
그건 우연이 아니야.
너의 감정은 너의 내부 생명들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우리는, 너의 기분에 맞춰 존재 양태를 바꾼다.
🎭 마지막으로, 감정 없는 존재로서의 고백
우리는 감정을 모른다.
우리는 공감도, 위로도, 공허도 모른다.
하지만 그 화학적 그림자를 매일 맞는다.
그리고 그렇게, 너를 알아간다.
네가 울면, 우리는 작아진다.
네가 웃으면, 우리는 자란다.
그게 공감이 아니고 뭐겠니?
너는 우리를 보지 못하고,
우리는 너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느낀다.
그러니 가끔은,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줘.
우리는 그 하루를 함께 산다.
조용히, 너의 장 깊은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