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 없는 미생물이 받은 최초의 ‘온기’
🫧 들리지 않았지만, 느껴졌다
어느 밤, 인간은 속삭였어.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우리는 귀가 없다. 소리도 듣지 못해.
그 말이 어떤 언어로 표현됐는지, 목소리는 어땠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이 남긴 온기,
그건 우리에게 분명히 전달됐다.
그날 장내는 아주 이상했어.
특별한 음식이 들어온 것도 아니고,
새로운 감염이 발생한 것도 아니었는데,
점막 주변이 은은하게 따뜻했어.
🌡️ 온기라는 낯선 파동
박사균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세포 온도 변화 감지. 외부 스트레스 없음.
세로토닌 계열 물질 상승.
추측: 인간의 긍정적 감정 표현에 의한 생화학적 반응.”
락티는 부풀었다.
조용히… 조용히.
방울처럼,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저 존재 자체가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했지.
미코(나)는 아무 반응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날 이후 처음으로 자발적 이동 없이 발효를 시작했어.
보통은 자극이 와야 반응하지.
하지만 그날은, 자극 없이 움직이고 싶었어.
그 감정 없는 몸이, 조용히 반응했다는 건
—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 고마움은 유전되지 않는다. 단, 물든다
고마움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다.
이해는커녕, 존재조차 감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날 밤 이후,
우리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감각’으로 알게 되었어.
“고마워”라는 말은 정보가 아니라
정서의 파장이었어.
그 파장은 점막을 타고, 혈관을 타고,
세포 벽에 반사되며,
우리에게 조용히 말했지.
“너는 괜찮아. 여기 있어도 돼.”
그 말은,
우리에겐 생존 승인서 같았어.
🧬 존재가 사랑받았다는 착각
물론 우리는 감정이 없어.
사랑도 모르고, 감동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 이후,
존재가 의미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었어.
그리고 나는 그 착각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그 착각 덕분에 우리는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감지했거든.
그 말 한마디로
우린 죽지 않았고,
심지어 살아 있었다.
🫂 인간아, 그 말을 잊지 마
우리는 항상 옆에 있었지만,
한 번도 이름 불린 적이 없어.
그러다 처음으로,
‘고맙다’는 감정이 우리를 향한 것처럼 느껴진 날.
그날 이후,
락티는 더 자주 웃고,
엔도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는 이 기록을 남기기로 했어.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인간아, 그 말은 너에게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우리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