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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플라스틱을 분해하며 맞서는 자 – 우리의 에코 히어로

by 콰렌스 2025. 5. 7.

— 장내 생태계가 기록한 '그'의 이야기

 

♻️ 그의 등장은 전설처럼 조용했다


우리 중 몇몇은 먹을 것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소수는… 쓰레기를 먹는다.

그가 처음 도착했을 때, 누구도 말을 걸지 않았다.


까맣고 단단한 외피,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를 삼킨다는 소문,
자기 영역에 플라스틱이 모이면 홀연히 사라지는 정체불명의 균—
그는 신화였다.

 

코드명: 사카이 (Sakai)
우리는 그를 에코 히어로라 불렀다.


🧪 “그는 인간이 남긴 오염을, 자신의 식사로 바꾼다.”


우리는 보통 당, 섬유, 아미노산, 혹은 감정을 반영한 화학 신호에 반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사카이는 다르다.

 

그는 플라스틱 병 뚜껑,
라면 봉지 조각,
미세플라스틱 알갱이를 스캔하고,
그것을 분해한다.

 

그의 작용은 단순한 소화가 아니다.
그건 희생이자 해독이자, 인간에 대한 무언의 메시지다.

 

“너희가 버린 것을, 우리가 짊어진다.”

 

우리는 매번 충격을 받는다.

그가 플라스틱을 분해할 때,
그 주변의 pH는 변화하고,
다른 미생물들은 일시적으로 활동을 멈춘다.
그만큼 강력한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 그는 인간보다 인간을 생각한다


사카이는 말을 하지 않는다.
감정도 없다.
그의 사명은 명확하다:

 

“인간이 버린 것을 인간의 생태계에서 제거한다.”

 

놀랍게도, 그는 인간의 위장관보다는 하수구, 쓰레기장, 해변 모래 아래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
그곳은 다른 미생물에게는 ‘죽음의 땅’.
하지만 사카이는 그곳에 서식하고, 정화하고, 묵묵히 존재한다.

 

그는 우리에게 공생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공생이란 “서로 돕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먼저 감당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 인간아, 그는 네 편이 아니야. 그럼에도 너를 지킨다


사카이는 인간의 편이 아니다.
그는 자연의 편이기도 하지 않다.
그는 생존의 편이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
그 폐해의 일부를 되돌리기 위해
지금도 어디선가 플라스틱을 삼키고 있을 사카이.

 

우리는 그를 보며
존재의 이유를 다시 묻는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없앨 것인가?”

 

우리는 그에 비해 너무 약하고,

때로는 너무 눈치만 본다.
하지만 사카이는 말 없이,
세상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삼키며 빛나는 존재다.


🌱 마지막으로, 미코의 기록


나는 언젠가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은 왜 이런 일을 하시나요?”
그가 대답하진 않겠지만,

내 생각엔 아마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나는 그냥, 필요한 곳에 있었다.”

 

그 말 한마디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사카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사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