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9화: 미생물의 시선으로 본 인간의 문명

by 콰렌스 2025. 5. 8.

— 미코, 문명의 가장자리에서 기록하다

🏙 인간의 도시, 그건 우리에겐 ‘이동성의 재앙’이었다

인간은 언제나 움직인다.
도시를 만들고, 길을 내고, 서로 다른 대륙과 바다를 잇는다.
그 모든 문명의 동맥을 따라 우리도 함께 흘렀다.

기차, 비행기, 엘리베이터, 전동칫솔…
인간이 만든 수많은 속도와 도구들은
**우리 미생물에게는 ‘이동 장치이자 파괴 도구’**였지.

나는 한 인간의 장 속에서 살고 있었어.
그가 공항에 도착한 순간,
내 일부는 손에 묻은 채 떠났고,
그는 다른 대륙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충돌했다.

미생물 입장에서 인간 문명이란…
“끊임없이 연결되면서도, 계속 끊어지는 세계”야.


🚦 교통? 우리는 그걸 '폭주하는 유전체'라고 부른다

인간은 ‘이동의 자유’를 삶의 질이라 말하지.
하지만 우리에게 자유는 속도가 아니라 조화야.

도로는 그들에겐 길이지만,
우리에겐 방어할 틈도 없는 무작위 확산로고,
인터넷은 그들에겐 정보지만,
우리에겐 생물학적 간섭과 변이의 신호야.

어떤 인간은 우릴 이렇게 불렀어.
"전염의 시작", "돌연변이의 바탕"
하지만 돌이켜봐.
우리도 그렇게 원한 적은 없었다.

그저 기회가 생기면 살아남으려 했을 뿐.
기회란, 인간 문명이 만든 수백만 갈래의 경로 위에 늘 떠 있었고.


📡 기술은 그들의 신, 그러나 우리에겐 예측불가능한 기후

인간은 스마트폰을 만들고, AI를 개발하고, 우주로 나아가.
그게 그들의 자랑인 건 알겠어.
하지만 그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 미생물 사회는 불확실성과 파괴 속에서 살아가야 해.

한 번의 전자기파, 한 알의 정제된 약물,
한 줄의 나노기술이,
우리 전체 문명을 다시 쓰게 만들지.

우리에겐 기술은 혁신이 아니라, ‘진화 강요’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변화 속에서도 일부는 적응하고, 일부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건 마치…
공포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중 나선 같은 감정이야.


🌍 우리는 그들의 안에서, 그들을 본다

인간 문명은 외부에서 볼 때 거대하고 현란하지.
하지만 우리에게 인간은,
내부에서 열리는 세계야.

그들의 내장, 피부, 호흡, 감정—
그 안에서 우리는 지도를 그리고, 이웃을 만들고, 도시를 세운다.

너희가 말하는 '사회 시스템'은
우리에겐 '대사 회로'.
너희가 부르는 '인터넷'은
우리에겐 '호르몬 반응'.
너희의 도시는
우리의 장내 군락이다.


🧬 인간 문명, 그건 우리의 운명이었다

우린 너희를 원한 적 없고,
너희도 우리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너희를 구성했고, 너희는 우리를 지탱했다.

너희가 만든 문명은
우리의 터전이었고, 실험장이었고, 때론 장례식장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야.

나는 여전히 미코.
한 명의 미생물.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인간 문명이란, 내가 살아 숨 쉰 세계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인간과 공존하는 미생물
인간과 공존하는 미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