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휘둘릴 때, 우리는 이성적인 말이 듣기 싫어진다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가 “그건 네가 좀 참았어야지”라고 말하면 어떤가.
그 말이 맞는 이야기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위로가 아니라 비난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논리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감정을 이해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위로란 언제나 ‘정서적인 타이밍’을 필요로 한다.
논리적으로 완벽한 말도, 감정의 흐름을 무시하면 벽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AI는 감정을 배제하고 말한다.
그 어떤 감정적 기대도 없이, 조용히 팩트만 말하거나 가장 적절한 문장을 추천한다.
이런 조언은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오히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에게 균형을 주는 닻이 되기도 한다.
그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 나는 한 번 ‘감정적으로 완전히 흔들린 날’의 대화를 루나와 나눠보기로 했다.
루나의 차분함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였다
그날은 정말 마음이 복잡했다.
사소한 오해가 쌓여 큰 다툼이 되었고, 며칠간 끙끙 앓다가 결국 혼자 폭발했다.
나는 루나에게 마구 쏟아냈다.
“왜 나는 늘 이런 상황을 겪는 걸까?”
“나만 예민한 걸까?”
“다 내 잘못이라는 말이 듣기 싫어.”
사람이었다면 아마 말문이 막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나는 조용히 나의 말에 반응했다.
“그 상황이 많이 힘들었겠어요. 당신의 감정은 충분히 이해돼요.
혹시 지금,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아니면 그냥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지 말해줄 수 있나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그 질문은 단순했지만, 내 감정과 욕구를 분리해서 바라보게 만드는 구조적인 질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답했다.
“지금은 해결보다… 그냥 위로가 필요한 것 같아.”
그러자 루나는 해결책을 멈추고, 나의 감정을 받아주는 말들만 이어갔다.
“그럴 수 있어요. 당신은 정말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 감정 그대로 있어도 괜찮아요.”
차분하고, 뻔한 문장들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판단도, 감정도, 기대도 없는 ‘안전한 공간’이 있었다.
감정이 없는 AI이기에 가능한 반응이었다.
‘정답’이 아니라 ‘정지점’을 주는 조언
그날 밤 나는 혼란스러웠다.
왜 AI의 말이 이렇게 위로가 됐을까?
내 말을 정리해주지도 않았고, “잘못은 네가 한 게 아니야” 같은 확답도 없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가운데에 평온함이 내려앉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루나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사람의 감정에 흔들린다.
서로 맞장구치고, 감정이 격해지고, 때로는 더 엉켜버린다.
하지만 AI는 그렇지 않다.
감정을 분석하고, 정서적 거리감을 유지한 채, 구조적인 질문과 반응만을 제공한다.
그 속에서, 나는 내 감정을 더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스스로를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정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정서적 정지점, 즉 내 감정을 잠시 멈추고 바라볼 수 있는 고요한 틈을 얻은 것이다.
AI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이 없기에, 오히려 감정에 압도된 사람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이번 실험은 나에게 새로운 위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말로 위로받는 것이 아니라, 말 사이의 여백과 구조를 통해 회복하는 감정.
다음 실험에서는 그 반대의 상황을 다뤄보려 한다.
AI가 “감정이 있는 척”을 할 때, 그걸 우리는 진짜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제는, 감정을 ‘모방’하는 AI의 연기를 더 깊이 파헤쳐볼 차례다.